프로즌 일상
안나는 침대에 누운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이 깨어나 있다. 안나는 그런 하늘을 볼 때면 엘사의 방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곤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안나는 그걸 실천으로 옮겼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고, 덕분에 엘사는 다 큰 안나가 자신의 몸 위로 눕는 충격을 견뎌내야 했다.
“언니!”
엘사는 어렸을 적에 그랬던 것처럼 안나를 침대 밖으로 밀어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위에서 내려오도록 몸을 굴렸다.
“안나… 가서 자. 안 졸리니?”
피곤함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는데도 안나는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하늘이 깨어났는걸! 이런 날엔 금방 잠들 수 없단 말이야.”
안나는 쾌활하게 웃으며 등을 돌린 엘사를 팔과 다리로 껴안았다. 안나 덕에 잠이 깬 엘사는 자신의 옆구리 위로 올라온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의 감촉이 좋았다. 차가웠던 방 안의 공기가 나른하게 바뀐 것만 같았다.
엘사가 다시 아렌델로 돌아온 이후, 안나는 엘사를 찾아오는 일이 부쩍 늘었다.
엘사가 어디에 있던 잘도 찾아내서는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그저 멍하니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또 오랜 시간 닫혀있는 문에 질렸었는지 보는 족족 문이란 문은 열어놓고 다니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엘사의 옆에 있을 때면 손이든 뭐든 일단 잡으려 했다. 그렇게 뭐라도 붙잡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어디론가 훌쩍 도망쳐 버릴 것 같다고도 말했다. 엘사 또한 접촉을 두려워할 이유가 사라졌기에 안나가 엘사를 찾는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안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려 애썼다. 초콜릿을 들고 안나의 방을 찾았고, 일이 끝나면 안나를 찾아가 가볍게 눈을 뿌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의 공백을 채우려는 듯이 둘은 많은 시간을 붙어 지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잠들 수 없다고 말한 것이 방금 전이건만 막상 따뜻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니 졸렸는지 잠에 먹혀 들어가는 목소리가 안나의 입에서 가늘게 새어 나왔다.
“엘사… 같이 눈사람…만들자…”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은 스르르 감기고 있었다. 이건 엘사가 자신을 너무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꼭 껴안았다. 부드러운 잠옷에 살결이 닿는 느낌이 좋았다.
방 안에 고요한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달아났던 잠이 다시 밀려드는 것을 즐기며 엘사는 눈과 귀를 닫았고, 곧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괴로운 표정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꿇은 안나의 모습이었다. 엘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고 곧 무슨 짓을 했는지 눈치챘다. 자신이, 동생의 심장을 얼렸다. 엘사는 급히 안나에게로 달려가려 했으나 발이 땅에 딱 달라붙어서는 움직이질 않았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시야에 겁에 질린 여왕의 모습도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건 꿈이구나.’
하고 깨달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그저 안나가 상처 입는 것을 다시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울 뿐이었다. 안나의 몸이 점점 얼어가면서 머리칼 또한 새하얗게 변해갔다. 엘사는 이게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려 애썼다. 하지만 꿈에 자신의 의지는 밤톨만큼도 반영되지 않는다. 자신의 꿈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꿈을 보며 엘사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여전히 꿈의 장면들은 생생하게 자신의 눈에 비쳤다.
괴로움에 눈을 가리고 울 자유도 없이 그저 볼 수밖에 없는 꿈은 너무 끔찍했다. 안나는 방 안에서 혼자 추위에 떨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괴로움을 자신이 대신 겪어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 아래 쓰러진 안나의 모습이 과거 장례식날의 자신을 연상시켜 더욱 괴로웠다.
안나는 얼어붙은 아렌델의 협곡 위에서, 달려오는 크리스토프를 뒤로 한 채 자신을 향해 달려왔다. 동생은 망설임 없이 13년 동안이나 자신을 외면해온 언니를 선택했다. 스스로 자신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였다. 현실에서라면 분명히 그랬을 텐데 꿈에서는 뭔가 달랐다. 한스가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봤지만, 안나는 자신에게로 달려오지 않았다. 그 아이는 원망스럽다는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엘사를 힐끗 보고는 크리스토프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스의 칼날이 엘사를 덮쳤다.
숨을 들이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뜨니 침대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등이 축축하게 젖어 불쾌했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안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