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칙칙한 빛깔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램프를 들고 있는 라푼젤이었다. 그녀는 훈련을 마치고 쉬고 있는 자신을 방해하기가 미안했는지 조심스레 엘사의 이름을 불렀다.
“저기, 엘사. 안나가 돌아왔어. 네가 알고 싶어할 것 같아서…”
그 소리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엘사는 라푼젤에게 고맙다 인사를 건네고는 방을 나왔다. 촛불로 따뜻하게 밝혀져 있는 복도는 사람 한 명 없이 휑했다. 빛이 약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 집에 익숙해진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 복도 끝 계단을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가자 마자 보이는 거실 소파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주황빛 도는 갈색 머리를 본 엘사는 지체하지 않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소리를 죽이지 않은 발소리 탓에 앉아있는 소녀도 엘사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챘는지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뒤쪽으로 보이는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불이 거실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안나.”
엘사의 눈썹 끝이 아래로 축 처졌다. 임무를 막 마치고 돌아온 안나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들이 여럿 생겨 있었다. 상처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엘사의 손이 그녀의 뺨에 붙인 반창고에 닿았다.
안나는 엘사를 보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언니 안 자고 있었구나?”
“이번엔 누구랑 같이 갔어?”
밝게 건넨 인사말은 가볍게 무시당했다. 누구라고 말해봤자 알지도 못하면서 물어보기는. 안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엘사의 손이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안나가 엘사의 얼굴을 보니 눈썹이 땅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그녀가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엘사는 상관없다는 듯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안 다치게 조심해달라고 부탁을 하는데도 매번…! 잠깐만 기다려, 라푼젤 불러올게.”
안나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려는 엘사의 팔을 붙잡았다.
“언니, 난 괜찮아. 별로 큰 상처도 아니잖아. 라푼젤은 크리스토프 치료해주러 갔어. 걔가 나보다 더 많이 다쳤단 말이야.”
엘사에게 누가 더 많이 다쳤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안나가 멈춰 세웠으므로 순순히 따랐다. 그녀는 소파 옆을 돌아 안나 옆에 자리를 잡았다.
크리스토프가 많이 다쳤다고? 당연하다. 원래 우리가 맡는 임무라는 게 그런 종류의 것들인데. 하지만 안나는 어떠한가. 사랑스러운 그녀의 동생은 원래대로라면 그런 류의 임무를 맡을 필요가 없었다. 안나가 가진 힘은 다른 이들이 가진 힘을 증폭시켜주고, 안정시켜주는 종류의 것이었지만 그런 보조 능력은 주 능력자의 역량이 충분하다면 필요치 않았다. 자신의 능력 부족을 남의 도움으로 채우려는 한심한 것들. 그 한심한 것들에는 엘사도 포함되었지만 그녀였다면 절대로 안나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보조를 받아서 더 강해졌다면 파트너 정도는 지킬 수 있어야지! 자신 때문에 능력이 알려지지만 않았으면 안나의 능력은 충분히 숨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괴롭게 했다.
물론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덕분에 안나와 엘사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긴 했지만. 엘사와 안나는 서로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엘사는 능력 소지 여부가 드러난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를 생각해보다가, 의미 없는 행동이란 걸 깨닫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라푼젤이 돌아오면 치료 받아.”
기세가 한풀 꺾인 엘사가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안나의 손을 꼭 잡았다.
“응.”
안나는 그런 엘사의 모습에 안심했는지 손을 맞잡고는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왔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임무가 힘들긴 했던 모양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어깨에 기댄 안나를 보며 엘사는 자신의 호흡에 몸이 움직이지 않게 하려 애썼다.
한밤중의 고요한 저택 안으로 커다란 괘종시계의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어두운 저택 안을 밝히고 있는 것은 작은 촛불들 뿐이어서 그림자가 많은 것들을 뒤덮고 있었다. 안나네가 오늘의 마지막 임무조였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들어올 사람이 없는 저택의 문은 굳게 닫혔다. 아마 이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언니는 오늘 뭐 했어?”
오늘은 받은 임무가 없어 하루 종일 훈련을 받거나 안나가 오기를 기다리며 침대에서 뒹굴기만 했었다. 훈련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안나가 눈을 뜨고는 엘사를 올려다보았다.
“엘사 또 무리한 거 아냐?”
“무리라니…임무도 없었는데 무리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엘사가 쭈뼛거리며 안나의 시선을 회피하자 안나는 더욱 집요하게 엘사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엘사의 손을 휙 잡아 소매를 걷어 올렸다. 드러난 팔에는 가벼운 찰과상과 멍이 나 있었다.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어도 어제까진 없었던 상처였다. 안나의 시선이 엘사를 향했지만 엘사는 입을 꾹 다물고는 삐걱거리는 나무바닥만 줄창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나는 자신의 얼굴을 엘사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옮겨 그녀의 푸른 눈과 시선을 부딪쳤다.
“엘사, 나 봐봐. 내가 그랬잖아, 쉴 때 푹 쉬라구. 언니 임무 없는 날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럴 때마다 이러면 진짜 큰일난단 말이야.”
어떻게 그래. 내가 쉴 때도 너는 위험한 일을 하며 상처를 입고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고 있을텐데. 쉴 때라도 훈련을 하지 않으면 너를 지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없다. 능력에만 의존해서는 네가 없을 때 너를 도우러 갈 수가 없어.
엘사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안나는 만족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올라가서 쉬어야 하지 않아?”
엘사는 다시 자신에게 머리를 기대어 오는 안나의 어깨를 팔로 감쌌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있다가…”
안나는 잠이 오는지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지만 이대로 아침까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 엘사는 흔들리는 불꽃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글 > Frozen Fanfic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렌델 빌라 사람들 (0) | 2014.05.12 |
---|---|
작은 (0) | 2014.03.20 |
일상 (0) | 2014.03.17 |
AA (0) | 2014.03.05 |
비행 (0) | 2014.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