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Frozen Fanfiction

비행

엘사는 자신의 일을 무척 좋아했다. 비행기를 점검하고 수리해서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큼 가슴 뿌듯한 일은 없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자신이 직접 비행기를 조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멋진 비행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일을 선택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객을 잘 선택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전 자신의 공방을 찾아온 손님은 주황빛이 도는 붉은 머리에 얼굴에 귀여운 주근깨가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막 비행을 끝내고 온 참인지 머리에 두른 고글을 아래로 잡아내려 목에 걸치고는 꾀죄죄한 몰골을 한 채 작업실 안으로 들어왔다. 낡은 가죽자켓은 흙투성이였다. 그녀는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엘사의 시선을 저절로 잡아끌었다. 손에 공구를 쥔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엘사를 발견한 그녀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기계 부속품들을 피해가며 엘사에게 다가왔다.


"엘사, 맞죠?"

"그런...데요."

"아, 전 안나라고 해요. 반가워요."


자신을 소개한 안나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엘사는 지저분한 장갑을 벗고 손을 잡아야 하나 싶었지만 무엇때문에 더럽혀졌는지 모를 장갑을 끼고 있는 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내민 손을 잡자 밝게 웃으며 엘사의 몸이 흔들릴 정도로 손을 흔들었다. 엘사는 갑작스런 악수에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진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때문에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임이 분명한데도 마치 몇 번은 만나본 사람처럼 친숙하게 엘사를 대했다. 엘사가 커피를 내 오자 망설임도 없이 입으로 가져갔다가 혀를 뎄는지 혓바닥을 쏙 내밀었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엘사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비행기 정비사가 필요해서요. 엘사가 이 방면에선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그나저나 되게 예쁘시네요."


예상치 못한 칭찬에 당황한 엘사는 콜록거리며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정작 그 말을 던진 안나는 생각나는대로 말을 던진 것 뿐이라 엘사의 반응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커피가 코로 나올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엘사가 정비사로서 이름이 조금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실력이 좋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외모에 대한 부분이 더 컸다. 백금발의 아름다운 여성 정비사에 대한 소문을 들은 이들은 호기심에라도 한번씩은 엘사의 정비소를 거쳐갔다. 많은 비행사들이 엘사를 자신의 전담 정비사로 고용하고 싶어했지만 엘사는 그런 제안들을 모두 거절해왔다. 


"안나씨도 그쪽에서는 유명하신 분 아니신가요."


엘사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웃었다. 

작업실에 박혀서 일하는 엘사에게도 소식이 들려올 정도로 안나는 유명인이었다. 비행 실력이 어떻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의 행동 자체가 유명했다. 

술집에서 만난 사람과 시비가 붙어 치뤘던 비행 시합은 며칠 동안 꼬박 진행되었는데 그녀는 쉬는 시간 없이 비행해서 결국 승리를 얻어내었다. 안나는 시합이 끝나자 마자 기절하듯이 잠들었고, 상대는 실력 좋은 베테랑 조종사였는데 막 비행기를 몰기 시작한 신참에게 졌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는지 그 날로 은퇴했다고 한다. 

비행에 대한 감이 좋기로도 유명했는데, 감만 좋은 편이라 운전은 험하다는 이야기도 항상 따라다녔다. 새로운 기종의 비행기에도 손쉽게 적응하는 편이어서 기술자들의 시운전 요청을 자주 받고는 한다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많은 데다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굉장했기 때문에 쓸데없는 내기나 시합에 참여하게 되는 일이 많았지만 자신의 입으로 꺼낸 말은 항상 지키는 경력 짧은 비행기 조종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덕분에 돌아다니는 안나의 사진과 기사들도 많았는데, 그 대다수의 것들은 엘사의 스크랩북에 담겨 있었다. 그녀는 비행사 안나의 팬이었다.


"유명한 일화들이 많으시던데."

"아...그런 건 모르셔도 되는데. 다 생각없이 저지른 일들이라 좀 부끄럽네요."


안나는 욱해서 저지른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붉히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 후로도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엘사는 파트너로서 안나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엘사는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중얼거리며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았다. 파트너가 될 사람에 대한 호감이 너무 커서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비행하는 동안 기체가 얼마나 흔들렸는지, 속이 울렁거렸다. 상상했던 것보다는 평범한 비행을 하길래 의외라고 생각하던 순간부터 갑자기 곡예 비행을 하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기억이라고 하기도 뭣한 게, 사실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안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안나 자신은 마치 조용하고 평범한 비행을 한 것처럼 멀끔한 상태였다. 비행기와 그녀들 중에 멀쩡한 것이라곤 안나 뿐인 것 같았다.


"괜찮아요?"

"아...네. 저기, 그런데 여긴 어디죠?"

"중간에 불시착 한거라 저도 어디인진 잘 모르겠네요. 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진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불안함이라고는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으로 밝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엘사도 순간적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안나는 일단 되는대로 눈에 보이는 섬에 착륙했다고 했다. 착륙이 순탄하지는 않았으니 아마 기체에 손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엘사는 비행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안나는 그런 엘사 주위를 알짱거리다가 그녀가 만지는 장비에 흥미가 생기는지 쪼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만져보기 시작했다.

불시착한 섬은 남쪽 제도에 넓게 퍼져 있는 작은 무인도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그렇게 큰 섬도 아니었고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비취색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건만 엘사는 그런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엘사."

"왜요?"


여전히 비행기에 코를 박은 채 대답하는 엘사를 본 안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이쪽 좀 봐요. 그건 나중에 고쳐도 되니까."


엘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돌리자 안나가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깜짝 놀란 엘사는 털썩 주저앉았다. 기름때 묻은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안나는 그런 엘사를 보고 킥킥거리며 웃더니 자신도 바닥에 털썩 앉았다. 새하얀 백사장 뒤쪽으로 비행기의 긴 바퀴자국이 보였다. 


"당신이 고칠 수 있다는 거 아니까 너무 급하게 안 해도 돼요. 이번 일은 날짜도 여유롭게 잡힌 건데 좀 쉬면서 가죠. 여기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잖아요!"


안나는 이 섬이 정말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엘사는 예정에 없던 이런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안나와 함께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때요? 나랑 첫 비행. 재밌죠?"


그녀의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


ㅇ..왜 이렇게 갔지..



' > Frozen Fanfic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렌델 빌라 사람들  (0) 2014.05.12
작은  (0) 2014.03.20
일상  (0) 2014.03.17
AA  (0) 2014.03.05
능력자물 ep  (0) 2014.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