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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Frozen Fanfiction

아렌델 빌라 사람들


아렌델 빌라는 평범하게 조용하고 시끄러운 사람들이 사는 작은 빌라다. 세워진지 좀 오래 된 편이라 아파트 단지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오도카니 서 있는 그 빌라는 아는 사람들만 알고 찾는 사람들만 찾는 그런 곳이었다. 한적한 곳에 위치해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주변에서 흔하게 들려올 법한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도 듣기 힘들었다. 조용해서 좋기도 했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지루한 곳이었다. 사실 모 영화에 나왔던 가상의 국가와 이름이 같아서 흉내낸 게 아니냐는 소릴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빌라 거주자들은 하나같이 그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세워진 낡은 빌라라고 합의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무엇보다 영화처럼 스펙타클한 사건은 커녕 사건의 사도 찾아보기 힘든 장소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누구야! 누가 내 한정판 윈터 솔져 피규어를 훔쳐간거야!"


아렌델 빌라 경비원 위즐튼의 절규가 온 빌라에 울려퍼졌다. 사실 위즐튼이 그렇게 크게 외친 건 빌라 사람들이 들으라고 한 행동이었다. 그의 의도대로 시끄러운 목소리에 놀란 빌라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침 요맘때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던 안나도 그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이에요 위즐튼 아저씨? 피규어가 없어졌어요?"


"오 안나로구나. 그래, 내가 밥 먹을 돈도 아껴가며 간신히 얻어낸 한정판 피규어가...! 무려 부품도 갈아 끼울 수 있는 거였는데!"


말하다 보니 더욱 화가 나는지 위즐튼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시뻘건 얼굴이 되어서는 모자를 벗어 연신 부채질을 했다. 머리를 뒤덮고 있는 저 가발을 벗으면 좀 더 나을텐데. 안나는 말을 꺼내는 대신 경비 아저씨의 회색빛 머리칼을 내려다 보며 그의 시원한 머리를 상상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아렌델 빌라에 사는 사람들 중 위즐튼이 애지중지하는 그 피규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즐튼이 빌라 사람들을 만나는 족족 새로 산 그 피규어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중에 몇몇은 완성도 높은 피규어를 보며 그것을 탐내기도 했을 것이다.


"분명 이 빌라 내의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을 게다."


이 근처는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그럴듯한 추리였다. 그리고 범인이라는 한 단어가 안나를 자극시켰다. 그녀가 항상 노래를 부르던 스펙타클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이것 또한 범인이 있는 사건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녀는 쉽사리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위즐튼에게 자신이 범인을 찾아 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물론 위즐튼이 안나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정말로 그를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나서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피규어 도둑을 찾고 있는 중이라구요?"


안나가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자신의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엘사였다. 그녀는 자신이 능력있는 프리랜서라고 말하곤 했지만 안나가 보기엔 그냥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덕후일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안나를 만날 때면 항상 얼굴이 붉어지곤 했는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치곤 말투가 무덤덤한 편이었다. 그나마 빌라 사람들 중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나에게 가끔 게임 영업을 시도하곤 했는데, 안나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넘어오지 않아 실패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취미생활을 잘 알고 있는 안나는 엘사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몇 안 되는 빌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이는 건데 엘사만 빠뜨리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제일 먼저 그녀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응. 엘사야 그런 피규어쯤은 이미 다 모았을테니까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


방을 뒤져 보겠다는 요청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말하는 안나를 보자 엘사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굳이 당신이 찾아주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었을텐데...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는데 탐정 놀이 좋아하는 건 여전한가 보네요."


흔쾌히 수락한 엘사가 안나를 방으로 들였다. 그녀가 주로 쓰는 방은 언제 와도 한결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지럽게 얽혀 있는 코드들, 방바닥에 쌓여있는 책들과 어느 기기의 것인지 구분이 헷갈리는 패드들은 정리되는 일이 없었다. 

엘사의 말로는 매번 정리를 해도 결국에는 항상 이런 꼴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작업 공간은 항상 비워져 있는 것도 신기했다. 책장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기하학 서적들을 처음 봤을 때는 이런 방에 왜 저런 책들이 있나 싶었지만 엘사와 대화를 몇 번 나눠보고 나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게임 덕후이면서 기하학 덕후이기도 했다. 사실 얘기하다 보면 온갖 장르란 장르는 다 알고 있는 잡덕후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고 지낸지 몇 년이 지난 이제는 안나도 이 방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어떻게든 발 디딜 공간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생겼다. 


이 방 외의 다른 곳은 전부 깔끔하게 정리해 두면서 왜 이 방은 정리를 못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생겼지만 엘사라고 별달리 그럴듯한 대답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엘사를 따라 피규어를 보관해 놓은 진열장 앞에 서서 보니 전에 얼핏 봤던 것보다 수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그리고 안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이 서 있는 윈터 솔져 한정판 피규어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게 저곳에 서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어서 도둑을 찾는 와중임에도 그냥 지나쳐 버릴 뻔 했다.


"저게 위즐튼 아저씨가 갖고 있었던 피규어랑 똑같은 거 맞아?"


"그렇긴 한데, 제 건 좀 달라요. 한정판인데다 배우의 싸인도 들어간 물건이라서."


자랑스럽게 설명을 늘어놓는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영화에 푹 빠져 여러 차례 다시 보러 갔었다. 몇 번이고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을 해 와서 그걸 또 보러 간단 말이야? 라는 얘기도 서너 번 반복했지만 결국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엘사와의 재관람에 빠짐없이 동참했었다.


"그래? 나 저거 좀 꺼내서 봐도 돼?"


엘사가 우물쭈물하며 고민하고 있는 사이 안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진열장 안으로 손을 뻗었다. 엘사는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챘지만 이미 피규어를 꺼내버린데다 그런 자잘한─물론 엘사에게 있어서 자잘하단 의미는 아니었다─걸로 호들갑을 떨며 쪼잔하게 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피규어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놓고 싶은 마음 또한 너무 강해서 차라리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할 정도였다.


싸인 받은 후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꺼내보려고 해도 긴장해서 손에 땀이 마구 차서 그냥 내버려 뒀었는데. 지금이라도 정중히 안나에게서 피규어를 가져와 조심스레 싸인만 보여주고 다시 넣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건 그렇게 잡으면 안 돼는데! 그녀가 싸인을 확인하기까지의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 갔다. 


진열장에 다시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보고 나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된 엘사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침대 가에 털썩 앉았다. 피규어를 보는 내내 잔뜩 긴장했던 그녀의 모습에 안나는 그녀가 범인이라서 저러는 건가 작은 의심도 들었지만 엘사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안나가 이 방 외의 다른 곳을 조사하는 동안에 진열장을 다시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정리가 다 됐는지 손을 털며 나오는 엘사를 본 안나가 불쑥 말을 꺼냈다.


"오늘 뭐 할 일 없지 엘사?"


딱 하나, 게임을 하나 켜서 엔딩까지 붙들고 있자는 계획이 있었지만 말해봐야 가볍게 넘길 게 뻔했기 때문에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엘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나는 마침 잘 됐다며 활짝 웃는 표정으로 긴장 때문에 땀에 젖은 손을 꽉 잡았다. 엘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녀는 엘사가 흥분을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하며 애쓰는 중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잡은 손을 흔들었다.


"나랑 같이 범인을 찾아보지 않을래? 재미있을거야! 위즐튼 아저씨도 돕고 좋은 일이잖아?"


확실히 엘사도 이런 류의 놀이에 흥미가 동하긴 했다. 그녀가 집에 박혀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렇지 알고보면 다른 사람과 장난치며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안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잠깐동안 자신의 계획과 안나의 계획을 비교해보던 엘사의 저울이 안나 쪽으로 기울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겉옷을 챙겼다. 고작 빌라 내를 돌아다니는 일이긴 했지만.



다음 수사대상은 윗집에 사는 크리스토프였다. 이 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 이웃끼리 잘 아는 사이긴 했지만 크리스토프는 드물게도 엘사와 잘 어울려 노는 사이였다. 덕후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인지 그 또한 분야가 다르긴 했지만 덕후였다. 얼음 덕후, 순록 덕후에 언젠가는 유통업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청년인 그는 얼음에 대해서 얘기해보라고 조용하고 느리지만 하루 종일이라도 신나게 말하며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얼음을 이용한 온갖 음식을 만드는 데 도가 튼 크리스토프는 여름에 찾아가기에 좋은 친구였다.


안나는 언제봐도 덩치 큰 강아지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어 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네가 올 것 같더라. 엘사가 올 건 예상 못했지만."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둘을 집 안으로 들였다. 안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크리스토프는 위즐튼의 외침이 들린 후 지금까지 마음의 준비를 마쳐놓은 모양이었다. 곧 올라오겠지 싶었는데 안 올라와서 어쩐 일인가 싶었다며 사람좋게 웃는 그를 보고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전원을 켜 놓은 티비에서는 얼음을 캐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의 집은 얼음이나 순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의 집합소 같았다. 모형이나 책부터 시작해 생활용품들까지 많은 것이 그 두 가지와 관련되어 있었고 선들이 복잡하게 얽힌 엘사의 집보다는 좀 더 깔끔했다. 물론 엘사와 비교하면 그렇다는 얘기였다.


나레이터의 설명이 배경음으로 깔린 크리스토프의 집에서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수집품들의 안위가 걱정되는지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안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간간히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런 둘을 내버려두고 소파에 앉은 엘사는 얼음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얼결에 시청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생각하면서 내용에 슬슬 빠져들어갈 무렵, 조사를 끝낸 안나가 엘사의 옆에 털썩 앉으며 그녀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크리스토프는 사람의 피규어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질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 건 엘사 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동물과 얼음들 사이에 사람 모양의 무언가가 있다면 바로 눈에 띌 텐데 그런 건 코빼기도 안 보인다면서 한숨을 내쉰 안나가 엘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그녀는 30초 정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시선을 주는가 싶더니 뻣뻣하게 굳어있는 엘사에게로 눈을 돌렸다. 안나의 시야에 엘사의 턱과 목, 그리고 반대쪽에 앉은 크리스토프가 들어왔다. 그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지 틀어놓았던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을 들으며 대화를 하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오늘도 안나의 제안을 무시하지 못하고 넘어온거야?"


"...재밌어 보이길래."


"그렇구나. 뭐, 안나랑 같이 있으면 심심할 일은 없지."


기분좋은 웃음을 지어보인 그는 한낮의 기분좋은 햇살에 깜빡 잠이 든 안나가 깰 때까지 엘사와 가벼운 덕토크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전날밤 뭘 한 건지 생각보다 푹 잠이 들었던 안나는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서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며 우울해했다. 엘사는 축 처진 안나의 모습에 안절부절하며 늦기전에 얼른 한 사람이라도 더 조사하면 된다고 다독였다. 너무 어설픈 위로라 엘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크리스토프는 예상외로 기운을 차린 안나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리며 둘을 배웅해주었다.



안나는 자신이 가장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범인 후보라고 말하면서 한스네 집 문을 두드렸다. 나가요! 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한 한스는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는지 숟가락을 한 손에 쥔 채 문을 열어 둘을 맞이했다. 그리고 안나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뭐야, 지금 귀찮게 됐다고 생각했죠!"


"아니, 아닙니다. 엘사씨도 같이 오셨네요. 보나마나 그 피규어 사건 때문이겠죠?"


"알긴 잘 아시네요."


"안나씨가 절 찾아올 만한 일이 그런 것들 외에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죠."


한스는 찔릴 게 없다는 표정으로 한 번 웃어보였다. 그는 대기업에 다니는 번듯한 회사원으로 못하는 것이 없는 다재다능한 사내였는데 아렌델 빌라에 사는 그의 또래라고는 크리스토프 뿐이어서 의도치 않게 그와 어울리게 되는 일이 많다고 크리스토프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에 한해서만 칭찬에 박한 안나가 보아도 한스는 능력 좋은 사람이었다. 안나를 놀리는 데 맛이 들린건지 자주 장난을 치곤 했지만. 덕분에 처음엔 쭈뼛거리며 대하는 데 애를 먹었던 안나도 금방 그와 티격태격하는 사이가 된 모양이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된 오늘 추가로 요리를 잘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엘사에게 한스는 여러 번 인사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워지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독을 탄 건 아니냐며 놀리는 안나의 옆구리를 찔러 자제시키면서도 그녀의 옆에 딱 붙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쨌든 그의 유능함과는 별개로 장난을 치는 일이 잦은 편이라 위즐튼의 피규어를 숨겨놓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안나는 그를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다며 한스의 집을 방문하기 전 엘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사실 엘사는 이번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상태였으므로 안나의 의견이 그럴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나가 탐정놀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빌라에 사는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므로 한스 또한 그녀가 불쑥 찾아와 이러는 것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잘못한 게 없으니 걱정없다는 태도로 저녁식사까지 대접한 그는 안나와 그 옆에 붙은 엘사가 방을 돌아보는 동안 책을 읽으며 기다려 주기까지 했다. 깔끔하게 정리된데다 피규어 비슷한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집에서의 수사는 금방 끝이 났다.


"늦은 시간까지 수고들 하십니다. 누굴 더 찾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저희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구요."


늦은 시간에 찾아왔는데도 별로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안나와 말을 주고받는 한스를 보며 엘사는 안도했다.


범인을 찾기는 커녕 단서조차도 잡지 못한 상태로 저녁시간까지 다 흘려보낸 안나는 처음의 자신만만했던 태도와는 달리 풀이 팍 죽어 있었다. 다른 집의 문을 두드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1층으로 내려온 안나는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고 내일 마저 찾아보자는 엘사의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계단에 피곤한 모습으로 쭈그려 앉아있는 안나의 옆에서 이걸 어떻게 기운을 차리게 해주나 갈팡질팡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엘사가 알기로 남은 집은 겔다와 카이 아저씨네 집과 보디가드 일을 한다고 하는 남자 둘이 사는 집 뿐이었는데  겔다네는 그런 영화에 관심조차 없는 집이었고 보디가드들은...뭘 하며 지내는지도 잘 모르겠는 사람들이었지만 굳이 그런 걸 훔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확인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빌라에 사는 사람들 중에 도난품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라고는 엘사 뿐이었다. 아니 애초에 범인이 빌라 안에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는데.


안나도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른 모양인지 엘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엘사."


별 생각 없이 잡아온 손을 빤히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자 안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엘사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슬쩍 피했다. 엘사의 입장에서는 눈을 피하는 이유를 안나는 조금 수상한 방향으로 생각했는지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엘사가 그러진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도...

센서에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아 불이 꺼졌다. 어두컴컴한 복도로 빌라 밖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들어왔다. 


"나 오늘 너네 집에서 자도 돼?"


"당연히...응?"


"고마워! 그럼 얼른 들어가자!"


엘사가 방금 자기가 무슨 질문에 대답했는지 곰곰히 생각하고 깨달은 시점에서 이미 안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쏙 들어간 후였다. 엘사는 잠시 멍하니 계단에 앉아있어야 했다. 




밤새 수상한 행동이라도 할까 했던 안나의 걱정은 다 쓰잘데기 없었다. 엘사는 바로 옆에 누워있는 안나에 무척이나 긴장해서 뻣뻣하게 굳어있다가 잠에 빠져든 뒤로는 안나를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움직이기는 불편했지만 덕분에 잠자는 사이에 어디론가 빠져나가지 않을까 싶어 자지 않고 버텨보려던 안나도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었다. 엘사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자신의 심장소리겠거니 하고 넘겼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코앞에 있는 안나의 얼굴과 서로 엉켜있는 팔다리를 보고 놀라는 건 엘사의 몫이었다.


택배 때문에 위즐튼을 찾아갔던 크리스토프로부터 바닥에 떨어져 있던 피규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보다 조금 뒤의 일이었다. 안나는 엘사가 차려주는 아침을 기다리며 어제 하루 종일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투덜거렸지만 엘사는 허무하게 끝난 탐정놀이의 결말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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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덕후 엘사랑 이상한 빌라 사람들 얘기가 쓰고 싶었는데...쓰다보니까 심하게 망가뜨리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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